(인터뷰) 터칭, 마음을 움직이는 투자자

민선홍

HFK Content Partner (PEST 브리핑, 고급진영어)

  • (현) 파인우드캐피탈 파트너
  • (전) 한화투자증권, 씨티은행, 삼일회계법인

민선홍 님은 사모펀드(PE)를 한다. ‘펀드를 사모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생각이 스쳐간다. 은행 팸플릿만 들쳐봐도 머리가 어지러운 금융 무식자인 인터뷰어는 [PEST 브리핑] 팸플릿에서 선홍 님을 소개하는 문구를 보며 ‘CPA는 아는데 CFA는 무엇일까’ 검색해본다. 공인재무분석사다. 단편적인 키워드로 추론하긴 어렵지만 파이낸스 분야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분인 건 확실하다.

HFK에서 선홍 님은 한 달에 한 번 [PEST 브리핑] 경제분야 뉴스 큐레이팅과 [고급진 영어] 테마에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주말 아침을 내어준 그가 한 시간이나 일찍 인터뷰 장소에 온 모습을 보며, 몸에 밴 그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즈니스 캐주얼 시대에 보기 드문 여의도 양복에 마이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익숙했던 터라, 주말 아침 편안한 모습을 마주하니 그의 이야기를 파헤치는 일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회계법인,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거쳐 현재는 부티크 사모펀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력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PEST 브리핑, 2019년 3월 @위워크

            
친구 따라 학원 갔다
나만 따고 나온 CPA (공인회계사)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안 했고 잘 노는 학생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교 친구들을 잘 만난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들은 모두 OT에서 만났는데, 그 친구들은 ‘중앙도서관에서 아침 9시에 만나’ 하는 애들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모두 공부했고 그 무리들이 첫 학기 때 받은 평균 학점이 4.0이상, 저도 그때 4.1인가? 받았어요. 처음 성적을 잘 받으니까 욕심이 생겼던 거 같아요. 장학금도 받았거든요. 어머니는 장학금 받으니 당연히 좋아하셨고, 저도 그때 20살이었는데 200만 원 받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동기부여가 되었죠.

경영학과라서 마케팅, 조직, 노사 이런 수업 많이 들었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마케팅도 이론은 알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일이 어렵잖아요. 저는 도덕, 인사관리 같은 애매한 과목보다는 답이 명확한 과목을 좋아했어요. 계산해서 답이 딱 나오는.

그리고 군대 갔다 왔더니 OT 조 친구가 저에게 ‘공인회계사 시험 같이 봐 볼래?’ 하더라구요. 저는 경영학과였는데도 회계사가 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별로 생각 없다’고 했는데, 학원이라도 같이 가보자 해서 따라갔어요. 그때 회계 강사 선생님이 지금도 강의를 하고 계신 분인데,  잘생기고, 시계도 반짝반짝 거리는 거 차고 계시고, 얼굴도 잘생기고 멋있는 거예요. 그때 ‘회계사를 하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는가 보다’ 했죠. ‘멋진데?’ 이러면서 수업을 계속 나갔어요. 저를 학원으로 이끈 친구는 중간에 그만두고, 저만했어요. 회계 공부 자체가 재밌었고, 저랑 좀 맞았던 것 같아요. 원래 숫자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해서 CPA 따는데 1년 반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어학연수기간에 결정된 첫 직장
그리고 더 늘린 어학연수 기간

 

CPA를 따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어학연수는 6개월만 하려고 했는데 미국에 온 지 5개월 즈음 전화 인터뷰로 한국 회계법인에 취업이 결정돼서, 입사를 최대한 늦추고 13개월 있었죠. 미국 플로리다, 뉴욕,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지냈습니다. 영어는 스트레스를 좀 받았어요. 뉴욕 물가가 비싸서 ‘이 돈 쓰는데 왜 이렇게 영어가 안되지? 아 미치겠다’ 이러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죠. 맨해튼 슈퍼마켓에 가서 ‘Hi’ 라고 했더니 주인이 ‘한국 분이세요?’ 묻더라구요. 한국 사람 ‘하이’는 많이 들어봤던 거죠. ‘아 진짜 ‘하이’만 해도 내가 한국인인 것이 티가 나는구나’  그런 좌절을 했었죠.

      
새벽 퇴근이
일상이던 첫 직장

 

귀국하고 4일 후, 첫 직장인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습니다. 거기서 3년 동안 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업무 강도가 매우 셌어요. 회계법인은 1월부터 3월까지가 제일 바쁠 시기인데, 입사하자마자 결산하느라 3개월 동안 새벽 3~4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택시에 실려서 집에 돌아오곤 했어요. 이때는 정말 잠이 많이 모자랐어요.

고객사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료를 검토하고 인터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외근도 많고, 지방 출장도 빈번했습니다. 돌아와서 검토하는 일도 많구요. 그렇게 두 번의 겨울을 보냈어요. 제가 싫증을 좀 잘 내기도 하는데 일이 재미가 없어져서 M&A 하는 팀으로 옮겼습니다. 큰 딜을 많이 하는 유명한 팀이라고 해서 갔는데 일이 엄청 많아서 더 유명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고생하고 있었을 때였죠.

         
천천히 쌓아 올린
금융 분야의 다양한 경험

 

이직을 알아보지는 않았는데, 2011년도에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때 제 나이 30살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일도 해보고 싶었고, 어학연수 시절 기억이 너무 좋아서 제안을 받아들여 바로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미국 갈 때 전 MBA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저는 토종이라, 해외에 가는 비행기를 26살, 어학연수 때 처음 타봤는데요. 유학원에서 걱정할 정도로 영어도 못하는 애가 비행기도 안 타봤다고 하니 걱정이 컸죠. 저는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외국에서 일도 해보고 싶고 공부도 해보고 싶은. 그래서 미국에서 일을 하다가 그 기간에 프랑스의 INSEAD라는 MBA가 돼서 거길 갔죠.

         
미국에 계셨으면
미국 MBA를 알아보는 편이 더 수월했을 거 같은데
어떻게 프랑스 INSEAD MBA를 선택하게 되신 걸까요?

 

미국에 일하면서 당연히 미국 MBA를 고려했습니다. 그 즈음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려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거든요. 결혼 준비하러 왔다가 무료로 MBA 컨설팅 해주는 곳에서 상담받으면서 INSEAD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의도치 않게 결혼을 빨리했어요. 30살에. 원래 40살쯤에 하려고 했는데 10년이나 일찍 했네요. 하하

경영학부를 나오고 CPA니까 경영학 공부를 더해야 하나 싶던 차였는데 INSEAD가 1년 과정이었고, 싱가포르에도 캠퍼스가 있다고 하니 ‘나중에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아시아지만 글로벌한 곳이잖아요. INSEAD에서 공부하던 중에 아내가 한국에서 첫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싱가포르 회사에서 반년 정도 일했는데, 덥기도 하고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아내의 바람에 따라 저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씨티은행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씨티은행이 해외 MBA 생들을 뽑는 프로그램이 있어 입사해서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HFK에는 그때부터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씨티은행이랑 오아시스 덕수궁이 가깝거든요.

                
HFK에서 같은 업에 종사하는
지훈님을 만나게 되다

 

은행 일에 금방 싫증을 느낀 저는 한화 투자 증권에서 PEF 투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됐죠.

거기서 일하면서 HFK에서 만난 고지훈 님과 함께 투자하려고 검토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지훈님도 부티크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어서, 제가 다니던 회사와 공동으로 투자를 검토했습니다. 보통 대기업 증권사는 단독으로 진행하는데, 지훈님이 이미 좋은 투자처를 알아둔 상태라 좋은 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서 진행했는데 결론적으로는 투자는 못했어요. 실패했죠. 그리고 얼마 후 지훈님이 본인 회사로 오라는 제안을 했어요. 지금 제가 있는 회사입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투자계의 스타트업으로 들어가게 되신 건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회사가 잘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고, 지훈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죠. 한국 대기업을 처음 다녀봤는데, 저랑 잘 안 맞더라고요. 동료들끼리는 보통 기존 회사의 CEO를 이름으로 불렀어요. ‘홍길동 형이~’ 이러면서. 그런데 한화는 ‘우리 회장님이~’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회사 오래 다니기가
목표인 분을 보면서
결심했어요.
한 살 이라도 어릴 때 독립 하겠다고.”

그리고 동료 중 한 분이 자신의 목표가 ‘회사 오래 다니기’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그게 조금 슬펐어요.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분이 나이가 40대 초 중반 정도였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른 곳에 비해 수명이 짧습니다. 임원 아니면 50대는 거의 없거든요. 실적 베이스라 실적을 내지 못하면 아웃 되고 잘하는 사람만 결국 남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 거 보면서 ‘내가 큰 조직 임원으로 다녀봤자 저렇게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독립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금 회사로 오게 됐어요.

 

대기업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을까요?

제가 지금 회사로 옮기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내의 첫 질문이 ‘직원이 몇 명이야?’ 였어요.  그때 제가 ‘세 명이야’라는 대답에, ‘그러면 당신이 가면 네 명이 되는 거냐’고 묻길래 ‘아니 나 포함 세 명이야’라고 주고받은 대화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 질문이 의료보험은 되는지 물어봤죠.

이야기를 다 듣고선 아내는 일단 반대했어요. 그리고서는 투자 업계를 잘 아는 장인어른과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모펀드는 원래 사람 많이 필요 없다’는 답변을 들은 아내가 ‘그럼 알았다 알아서 하라’고 했죠. 그래서 가게 됐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오래 다닌 게 3년인데 지금 여기 온 지는 10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라 논리만 가지고는
설득하기 역부족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그들을 움직이는 한 끗은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예요”

 

사모펀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쉽게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투자를 위해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금융기관에 돈을 모아와야 투자를 할 수 있어요. 남의 돈 받아 투자하는 일인데요. 여기서 제 역할은 투자할 곳을 찾고, 정부기관의 돈을 모으고, 운용하고, 회수하기까지가 제가 하는 일입니다. 그때 지훈님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에서 투자처는 이미 찾았지만 투자 조건이 안 맞아서 투자는 실패했어요.

 

운용을 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돈을 모아서 투자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 어떤 일을 더 하는 건가요?

기업인수건은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직접 관리를 합니다. 경영 참여도 하고 초반에 회사 시스템 바꾸고, 프로젝트 리딩하고, 조직을 바꾸기 위해 컨설팅도 받아요. ‘조직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습니다.’ ‘회계 시스템, 전략은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습니다.’이런 식으로. 여러 사항들을 경영진과 논의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기존 경영진이 잘하는 경우, 투자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이사회 멤버로 주요 의사결정은 함께 합니다. 그 때문에 운용보수를 받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모펀드가 많이 생겼어요. 하나만 잘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니까.

 

사모펀드는 수수료 수익으로 돈을 버는 구조네요

네 맞습니다. 수수료가 두 가진데 첫 번째는 투자만 해도 받는 수수료가 있고, 나중에 기업이 잘 되었을 때 받는 성공 보수가 있어요. 보통 투자금의 1.5~2%는 연간으로 계속 받습니다. 성공하면 추가로 번 돈에 20% 정도는 저희가 받죠. 그래서 동기부여가 됩니다. 잘되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큰 사모펀드 경우 운영자금이 2조 정도 된다면 기본 운용 보수 2%로 400억을 매년 받게 됩니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와 현재 부티크 사모펀드에서 일할 때 업무 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기업은 프로세스가 복잡합니다. 투자처를 실사했던 자료를 가지고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투심(투자 심의)을 거칩니다. 경영진이 투표를 하고, 이사회 승인도 받아야 했습니다. 대기업 하의 금융은 규제가 많아서.

이사회에서 발표도 해보고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투자는 속도가 중요해요.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되는데 대기업은 이 프로세스가 끝도 없어요. 그때 대기업은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쉽지 않구나 생각했어요. 대기업 금융기관들도 실제로 잘 하는 곳이 별로 없어요.

지금도 회사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해서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결정하기까지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릅니다. 대신 의사결정에 대한 부담감이 있죠. 그전에는 절차가 복잡하더라도 위에서 걸러지는 효과도 있었으니까.

 

지금 회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대기업에 비해 빠르게 업무를 추진해 나갈 수 있고,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서 만족스럽게 업무를 하고 계시다고 느껴집니다. 좋은 점만 있나요? 힘든 점 없으세요?

힘든 점 많죠. 예전엔 회사를 소개받아 전화를 했을 때 ‘한화의 민선홍입니다’ 하면 만나는 데까지 어려움이 없었는데 지금은 ‘파인우드의 민선홍입니다.’ 이러면 ‘파인우드가 뭔데요?’ 라는 질문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회사와 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 사람이 허무맹랑한 애는 아니구나’ 정도 인식이 생겨야 만날 수가 있어요. 그렇게 만나기까지가 어렵죠.

매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희가 돈을 모아 올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대기업, 한화라면 그런 질문도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돈 모아 올 수 있어요?’, ‘이런 거 해본 적 있나요?’라는 질문부터 답을 해야 하니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게 어렵습니다. ‘해본 적 있다’ 과거 경력과 경험을 설명하고, ‘믿어 주십쇼’ 하고 납작 엎드리기도 하죠. 상대측에서도 굳이 잘 모르는 곳과 하기보다는 큰 투자사와 하는 게 편할 겁니다. 그래서 큰 기관을 제치고 딜을 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리고 외로움도 있어요. 바로 전 회사에서 팀원이 7명이었는데 지금 회사는 저와 대표까지 총 3명에다가 거의 혼자 일하니까 외롭기도 해요. 또 지금 회사 오피스가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해요.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는 낯섦?,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낯선 지점들이 종종 있어요.

저는 지금 제 커리어의 2nd 스테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존에는 월급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저의 월급은 제가 벌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나 할까.

 

모든 단계가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좋은 투자처 찾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투자 건이 있어야 펀드레이징을 할 수 있으니까.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지금 실사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이 있어요. 파인우드 캐피털 회사에 와서 처음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실사 거의 막바지고, 그거는 조그만 회사 인수 건인데 그거 하면 이래저래 바빠지겠죠? 이제 펀드레이징 해야 할 단계입니다. 그것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그 기업이 규모가 큰 투자사와 선홍님의 제안을 저울질했을 텐데 결국 맡게 되셨어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긴 다윗이 된 기분이실 거 같은데, 어떻게 가능하게 만드셨을까요.

저희가 제시했던 향후 성장 전략을 좋아하셨고, 두 번째는 저희가 괜히 좋았답니다. 마음을 얻은 거죠. 일해보니까 이게 논리로는 아무리 얘기해도 안될때가 있어요. 다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오히려 한 끗을 결정하는 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인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포인트라고 집어낼 수가 없네요. 그리고 그 회사가 파주에 있는데 미팅하면 늘 저희가 갔어요. 다른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작은 지점이지만 그런 것도 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셀러는 리스크 테이킹을 한 거죠. 마지막에 경합했던 곳은 이미 상장사였거든요. 이미 돈이 다 있는 회사였고, 결정을 내리면 바로 내일이라도 돈을 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희는 실사도 해야 하고, 펀드레이징도 해야 했고 셀러 입장에서는 훨씬 리스크가 크지만 결정해주셨어요. 저희 같은 곳은 애초에 딜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 같아도 큰 곳이랑 하죠.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펀드레이징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도 조건이 좋아야 투자자들이 많이 모이거든요.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역량이 있으면 좋을까요?

사모펀드 하려면 알아야 할 게 많습니다. 회사를 평가하고, 분석하고, 투자처도 찾아야 하고, 회사를 어떻게 이끌지도 고민하고, 펀드레이징도 해야 하기 때문에 회계, 경영전략, 세법, 상법 다 알아야 해요. 하지만 모든 걸 다 할 수 없으니 일부는 외주 주는 거죠. 그렇지만 너무 모르면 보고서가 와도 이해를 못 하니까 다 알긴 알아야 해요. 자본시장법도 알아야 하고. 법적으로 맞는 투자구조인지 알아야죠.

예전엔 파이낸스 스킬만 있었다면, 지금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스킬을 많이 키우려고 하고 있어요. ‘선량한 투자자 컨셉으로 나는 너를 절대 등쳐먹지 않는다’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걸려 있어서 민감한 부분이 있어요. 감정이 왔다 갔다 할 때도 있고, 몇 달을 이 일에 매진했지만 막판에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럼 데미지가 크게 옵니다. 그래서 너무 지치지 않게 감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만의 회복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죠.

그리고 저는 요새 트렌드슈팅이나 케이스스터디를 나가고 있는데 이유도 사실 업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어요. 제가 평소에 브랜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냐면 사촌동생이 지갑을 샀다고 보여줬는데 저는 처음 보는 로고였어요. ‘XL이 뭐야? 브랜드 이름이 엑스라지니?’ 루이비통이었습니다. 하하. 그 정도로 브랜드에 관심이 없고. 지금도 패션, 브랜드 거의 몰라요. 요새는 일 때문에 보긴 하는데 아내랑 백화점 가도 거의 모릅니다. 상대방의 브랜드도 안 보이니까 더 편했는데, 요새는 이 업무를 하면서 어느 정도는 알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시간이 걸리겠죠. 매거진 B 세션이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저는 일단 일을 벌립니다.
힘은 드는데
꾸역꾸역 다 하게 되더라구요”

 

기억에 남는 선배나 롤모델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사람 많죠, 저는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중에 제가 어려워했지만 좋아했던 분 한 분 계세요. 삼일회계법인 다닐 때 상무님이셨는데. 보고서 들고 가면 보기도 전에 몇 개 질문을 하는데 실수한 것들을 콕콕 찔러 질문을 하는 예리한 분이셨죠. 나는 어렵게 고민하고 있는데 쉽게 솔루션을 주신 적도 있구요. 그런 부분에 대한 존경심이 있죠.

그리고 아랫사람에게 허물없이 자신을 쉽게 보여주시는 인간적인 상사도 기억납니다. 예를 들면 ‘와이프랑 또 싸웠어 이혼당할 거 같아.’ 이러면서 편하게 이끌어 주셨던 분. 인간미 있는 분. 스마트하신 상무님과 균형이 잘 맞았어요.

지금 대표님도 매우 스마트하세요. 그런 점을 제가 존경하고 있고. 다 장점이 있는 거 같아요. 저는 명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단점이 많더라도 장점이 명확하면 좋은 거 같아요. 강의 나가서도 학생들에게 ‘파이낸셜 재무관리 못 봐도 된다. 대신 A 맞는 과목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게 꼭 내 수업일 필요는 없다.’라고 하죠. 저는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가 명확한 엣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업무적으로 어떤 후배가 좋은가요?

직장생활하면서 좋았던 후배들은 오너십이 있는 친구들이었어요. 주니어라고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먼저 질문을 하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제안을 하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좋습니다.

제가 싱가포르에서 일할 때 팀에 저 빼고 모두 인도 사람들이었습니다. 유일하게 덜 까만 사람이 저였는데, 인도 애들 엄청 격렬하게 토론하더라고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에 대한 피드백은 격렬하긴 했는데, 맞다고 생각하면 그런 방향으로 잘 가더라구요. 그런 것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와서 위 포지션으로 가게 됐을 때 그런 문화를 만들고자 많이 노력해서 한화 있을 때도 먼저 물어봤어요. ‘어떻게 생각해? 좋은 거 같아?’라는 질문을 많이 하고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요새도 국민대에서 재무관리 강의를 하나 하는데 수업 시간에도 질문 많이 합니다.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될까?’ 답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넥스트 스텝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등등. 제가 그냥 주르륵 얘기하면 머리에 안 남으니까 지각한 학생들에게 질문도 하고. 하하하. 그런 과정이 좋았고, 제가 주니어일 때 이렇게 해줬던 사람들한테 고맙고. 지금은 제가 이끌 사람이 없으니 안 하고 있죠.

결국은 책임감과 오너십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우선 절대적으로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택시에서도 컴퓨터 열고 일하고, 늘 핫스팟을 연결해놓고 다닙니다. 좋게 말해 멀티태스킹인데, 회의하면서도 여러 일을 처리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하더라구요. 최대한 두 마리를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PEST 브리핑할 때 도 그 시점에 스터디하는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그리고 음악이나 드라마같이 관심 없는 분야는 1도 보지 않습니다. 요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넷플릭스 이런 건 많이 봐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때려 부수는 것 들로요. 삶이 힘들수록 자극적인 걸 좋아하게 되나 봐요. 학창시절에는 독립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시작하기 부담스러워요. 여운이 남을까봐. 나중에 나이 먹었을 때 ‘나의 30대가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하루하루 너무 정신없고 주말에도 일하고 그러니까. 12시 1시에 자요 보통. 가족한테 미안한 부분이 있죠. 아무래도 바쁘다 보니까.

 

살아오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안주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찾아다닌 점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본 것 같아요. MBA 전까지는 돈이 의사 결정할 때 큰 요소가 아니었는데,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니 그런 부분 무시는 못 하죠. 현재는 지금 수준을 만족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일하러 갔을 땐 영어도 못했고, 아는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서 힘들었어요. 근데 사람이 닥치면 꾸역꾸역 다 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우선 일을 벌여요. 강의도 맡고. 그럼 어느새 꾸역꾸역 하게 돼요. 준비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하고 나면 성취감도 생기고. 그냥 듣기만 했으면 안 남았을 콘텐츠가 남으니까. 이런 건 잘했던 거 같아요.

 

자극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와이프는 늘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누가 집을 샀다더라’ 이런 얘길 하면 ‘나도 빨리 뭔가 해야 할 텐데’, ‘우리 가족이 나로 인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우리 가족이 행복하려면 물질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먼 훗날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려우니까 ‘서울 살려면 돈이 있어야겠다’ 그런 것들이 자극이 됩니다.

업무적으로는 ‘다른 투자 기관이 어떤 투자를 했다더라’라는 소식을 들으면 ‘이런 좋은 투자를 어떻게 했지?’ 큰 딜을 성사한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습니다. 예를 들어 블랭크나 OTD 같은 이커머스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는데요.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투자를 결정하고 펀드레이징까지 잘 해냈다는 것에 놀랍니다. 설득을 잘한 거니까. 나 같았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봤을 때 어려운 투자를 잘 해내는 걸 보면 자극을 받아요.

또 이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창업자, 오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극을 많이 받게 됩니다. ‘모두 대단하구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면서.

 

선홍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첫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은 내가 몰입해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성과까지 이뤄낼 수 있는 일.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일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나이를 먹으면서 돈을 벌기 위해 평생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좋아서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제가 PEST 브리핑에서 종종 ‘평생직장은 없다.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인생 2막에 가서도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돈을 정말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백만장자는 아니지만 내가 선택할 때 돈이 장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저는 오래 일하고 싶어요. 주변에 자주 이야기합니다. 오래 일하고 싶다. 그게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좋아서 하는 일이고 싶어요.

                      
“HFK에서 세션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각성 상태로 있을 때가 있어요.
잠이 안 와 막 각성이 돼서.
피곤함이 없어지고 기운이 나고, 그런 느낌?”

 

씨티은행에 근무하던 시절에 HFK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16년 4월부터 현재까지 약 3년 정도 함께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모임이었고, 지금 모습의 HFK가 되기 전에 ‘오아시스 덕수궁’ 첫 펀드레이징 할 때부터 나왔던 거 같아요. 그때는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 스킬업’등과 같은 내용으로 세션을 듣곤 했습니다. HFK 만들어지고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유리님의 잉글리시 클럽 세션을 처음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회사와 오아시스 덕수궁이 가까워서 점심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멤버였는데 어떻게 ‘PEST 브리핑’과 ‘영어 디베이트’를 이끌어 가는 파트너가 되셨을까요?

재윤님이 제안해주셨어요. 초반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을 때였는데. 오아시스 덕수궁에 책도 이렇게 많이 없었을 시절에요. OB 멤버 경화님이 지금의 오아시스 덕수궁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고 나서 더 자주 왔습니다. 은행 다닐 때 점심시간에 와서 잠도 자고 가고, 지금은 많은 참여자들과 함께 위워크에서 하고 있는 PEST 브리핑도 여기서 열 명정도로 시작했어요.

 

첫 PEST 브리핑, 2017년 2월 @오아시스 덕수궁

 

그리고 HFK 멤버 중에는 파이낸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도 별로 없고. 저는 시작하면서부터 꾸준히 참여했고, 제가 한때 많으면 1주일에 5일도 나왔던 때가 있었거든요. 제 업의 분야와 참여도를 보시고 제안을 주신 것 같아요 하하.

생각해보니 회계101클래스도 진행했었네요. 회계 기초를 다루는 8시간 수업인데,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고급진영어에서 영어디베이트를 맡게 된 계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2년 동안 운영한 토론 스터디가 있었어요. 토픽 정하고, 토론하는 세션을 개인적으로 했는데 재윤님이 HFK에서도 하면 좋을거 같다고 제안을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시작한 지 7~8개월 된 거 같아요. 여름부터 HFK에서 했으니까. 인원이 처음에는 많았는데 서울역에서 하게 되니까 인원이 줄어든거 같아요. HFK에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경영, 파이낸스 관련된 책이나 주간지 읽고, 다같이 독서토론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하하

 

영어디베이트, 2018년 2월 @남산 지식방앗간

 

요새 점점 트렌드슈팅으로 사람들이 많아지고 몰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해~~ 하하하하하

 

HFK에서 멤버로 참여할 때와 테마를 리딩 하는 파트너일 때 차이점이 있을까요?

단적인 예로, 잉글리시 클럽에 참여하려면 아티클을 읽어야 하는데, 멤버로 참여할 때는 읽고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와서 다른 분이 이야기하는 내용 듣고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너무 편하게 온 거죠. PEST 브리핑할 때도 준비를 계속해야 해서 순서를 일부러 뒤쪽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기사도 찾고, 숫자를 이야기하다 보니 머리에 어느 정도 담고 가야죠. 그러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화가 됩니다. 또 멤버분들이 PEST 브리핑에서 얼굴 한 번씩은 봤으니까 친숙해 하시는 거 같아요. 트렌드 슈팅에 참여해서 농담을 좀 했더니 ‘PEST 브리핑 때와 분위기가 다른데?’ 이러셨죠.

멤버로 참여 하시다가 안 나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롤을 맡으면 좀 더 애정도 생기고 묶이게 되는 그런 점은 좋은 거 같아요. 오기까진 너무 힘들고 ‘그만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하는데 막상 하면 디베이트가 재미있습니다. 싸울 때도 가끔 있고, 격하게 될 때도 있고 그러라고 하긴 해요.

가끔, 세션하고 나면 집에 가면 각성 상태로 있을 때가 있어요. 잠이 안 오는 거죠 각성이 돼서. 그 세션이 끝나고도 피곤함이 없어지는 느낌. 기운이 나고. 그러면 그때부터 넷플릭스 새벽까지 봅니다.

대학교 강의도 하나 하고 있는데 힘들어요.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 한 학점. 영어로 강의하고 있고 준비도 해야 해서. 그래서 입도 풀고 들어가요. 그거는 리턴에 상관없이 시간을 쓰는 거고. PEST 브리핑 정치분야를 리딩 해주시는 이강원님을 통해 회계 관련 수업 자리를 추천받고 일을 하게 됐죠.

HFK 활동을 통해 좋은 분들, 재미있는 분들 많이 만났어요. 지훈님도 여기서 만났고. 모르는 분야를 혼자서 공부하면 수박 겉핥기 정도 밖에 안되는데, 업계에 있는 분들 만나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도 HFK 멤버분들 중에 MBA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조언도 해드리고, 회계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에게도 여러번 도움을 드렸어요. HFK에서 도움 받은 만큼 저도 도움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최서인@se2nee, 박가을@fall_in_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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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터칭, 마음을 움직이는 투자자”의 8개의 댓글

  1. Sol 댓글달기

    열심히 사시는 멋진 선홍님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Touching!

  2. Hyeongki Lee 댓글달기

    선홍님 음성지원이 되어 더 생생하게 본 인터뷰였어요!!
    치열한 인생 너무 인상깊었습니다!!

  3. 남동우 댓글달기

    잘 읽었습니다. 🙂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셨기에 지금의 민선홍님이 계셨던거군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ㅎㅎ
    글을 읽다보니 궁금한 점이 많아져서 자주 인사를 드릴 것 같은데요? ㅎㅎㅎ

  4. 이송미 댓글달기

    멋진 글 감사합니다. 저도 일이란 내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늙어서도 내 자신을 성장 시켜줄 일을 하길 바라며..!

  5. 오유리 댓글달기

    선홍님~인터뷰 내용 곳곳에 그동안의 치열함과 열정이 느껴지네요!^^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합니다!!!

  6. 곽수진 댓글달기

    매월 PEST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인터뷰로 멋진 모습 잘 보았습니다 🙂 좋은 자극이 됩니다, 더 열심히 해봐야겠어요! 🙂

  7. 임경아 댓글달기

    세션 진행하실 때마다 이거 다 언제 준비하시는 걸까? 싶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런 치열함이 있으셨네요. 멋지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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