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전략기획가

박마가

HFK Operating Partner (고급진영어)
• (현) 지멘스 헬시니어스
• (전) 삼양사

 


 
 마가님은 전략기획 업무를 한다. 어떤 것이든 ‘시작되게 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일이다. 항상 새로운 포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에겐 딱인 역할이다. 외부활동을 하면서도 기획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직업병을 발휘하는 것이 그에게 큰 즐거움 중 하나로 보인다.

 [고급진영어] 테마를 리드하는 마가님은 인터뷰를 위해 처음 뵌다. ‘고급진’ 장벽을 넘기 어려운 인터뷰어는 ‘어드벤처, 다른 테마 탐험하기’ 찬스로도 [고급진영어] 에 발을 들이지 않기 때문. 그덕에 그는 질문을 받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인터뷰 하자며 질문을 쏟아낸다. 다년간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몸에 베인 노련함이었을 터.
 

‘고여있고 싶지 않다’는 그의 가치관은 식품산업과 의료산업, 언론홍보와 전략기획을 넘나드는 커리어에서도 발견된다. 보고서 마지막장 대미를 장식하는 ‘중장기 목표’는 그의 삶 속에도 적용되어 있다.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살고 있는 그의 다음 행보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들어본다.

HFK 멤버십 라운지 ‘오아시스 덕수궁’ 인터뷰 중

 


 

전공보다 적성을 찾아서.

첫 사회생활은 2005년 삼양그룹에서 언론홍보담당자로 시작했어요. 아, 라면 만드는 회사 아니고 밀가루, 설탕과 같은 식품과 화학사업을 하는 회사입니다.

저는 학부때 전자공학을 전공했어요. 전공을 살려서 간 친구들은 주로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가서 연구원 생활을 합니다. 저는 최대한 전공을 안 살리고 싶었어요. 연구원 되기 싫어서. 대학시절 삼성전자 리쿠르팅이 있던 날 삼양사 부스도 있었어요.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여기 알짜배기 회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가서 물어봤죠. ‘혹시 전자공학 전공했는데 경영지원쪽에 지원 가능하냐’ 물었더니 전공불문이라는 답변을 주시더라구요. 삼성전자와 삼양그룹 둘다 합격했는데 삼성전자 안가고 삼양사를 갔어요.

 

삼양사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전공으로 연구원이 되어 매일 아침마다 그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신입사원 연수 중 면담 때 홍보팀 가겠다고 얘기를 했죠. 인사팀장님이 ‘우리가 전공 불문이긴 하지만 전자공학 전공인 애를 홍보팀 보낸다고 하면 회장님이 뭐라고 할거다. 공장지원쪽은 어떠냐’라고 제안을 주시더라구요. 사실 공장도 전자공학이랑 상관이 없긴 한데, 사람들이 들었을 때 그나마 이해할만한 곳이라고 여겼나봐요. 공장이 있는 계열사 사장님과 면담을 또 했죠. ‘여기 오면 다양한 업무 기회를 주겠다’ 하셨는데 저는 여기서 홍보팀 업무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이 회장님 사촌 동생이셨더라구요. 그땐 그걸 몰랐죠.

일단 홍보팀에 자리가 있다는 소식도 접했기도 했고, 대학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싸이월드에 ‘페이퍼’라는 서비스가 있었어요. ‘개인이 내는 신문’이라는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저는 거기서 스누피라는 만화에 관한 페이퍼를 발행하는 일을 했죠.

 
어머, 닮으셨어요.

 

네 맞아요. 제 별명이 스누피입니다. 눈이 까매서. 스누피가 아이들 만화라기보다 철학적인 성인만화에 가까워요. 그거 번역하면서 거기에 담긴 뜻을 풀어 쓰고 일상적인 이야기와 엮어서 약 100회 정도 발행했어요. 누적 뷰가 한 만회정도? 지금은 그 서비스를 닫았지만 다행히 글은 미니홈피에 들어가있습니다. 지금 보면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런 글쓰기를 했었죠.

또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비평 사이트에 글을 쓰곤 했어요.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후추닷컴이라는 사이트라는 곳에.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를 넘어서 즐기는 것이다’라는 컨셉으로 여러 글들을 썼죠.나름 한 말빨, 글빨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는데, 추천을 많이 받아서 이주의 후추상도 받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공이 전자공학이지만, 글쓰는 걸 좋아한다’라고 어필을 많이 했었고, 홍보팀 가려고 경영지원을 지원한건 아니지만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었죠.

 

홍보팀에서 일하면서 무엇이 좋았고 어떤 점이 어려웠을까요?

 홍보팀은 회사에 있는 모든 분들과 연락을 취하고 만날 수 있어요. 회사에 있는 절반 정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던 거 같아요. 기사를 쓰려면 팩트체크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외부로는 기자들도 많이 만나죠. 삼양사는 B2C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B2B가 더 강한 회사입니다. 설탕,밀가루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보다 빵공장, 과자공장 등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비율이 90%가 넘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B2B가 더 크기 때문에 기자들이 그렇게 관심이 있는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설탕, 밀가루, 석유화학, 항암제 등에 그렇게 관심있어 하지 않았죠. 그래서 기자들이 데스크에 들고 갔을 때 먹힐 만한 기사들을 썼어요. 예를 들면 회장님의 경영활동, 동향 등이요.

 또, 다른 회사들과 함께 콜라보로 기사거리를 발굴하기도 하죠. 식품회사들은 홍보팀끼리 서로 친해요. 별도로 커뮤니티가 있어서 정기모임을 가지곤 하거든요. 다 모이면 100명정도 모이고, 자기회사 식품들 나눠주면서 서로 홍보하기도 하고 거기 있는 분들이 소스들을 모아서 괜찮다 싶으면 기사화 하기도 했죠.

 

식품회사는 굉장히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커뮤니티가 지속될 수 있는 걸까요?

 영업 쪽은 경쟁이 매우 심하죠. 그런데 홍보는 경쟁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예요. 설탕, 밀가루는 CJ, 삼양, 대한제당 등 회사가 몇개 없어요. 그런데 홍보 잘한다고 해서 그 시장의 포션이 확 바뀌진 않거든요. 그래서 영업에 비해선 경쟁심리가 좀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식품 쪽을 담당하는 출입기자도 이 모임에서 식품업계 홍보담당자를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서로 윈윈이 됩니다. 식품업계가 굉장히 넓거든요. 주류. 장류 이런 카테고리까지 합치면.

 

그러면 식품업계 언론홍보담당자로 일하다가 어떻게 의료기기산업 전략기획업무로 커리어를 전환하신 걸까요.

언론홍보담당자로 5년정도 일한 후에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1년짜리 MBA프로그램을 다녀왔던 것이 저의 인생전환점이 되었습니다. MBA다녀온 후에 삼양사에서 직무가 바뀌어 컨설팅 프로젝트, 전략 업무를 맡다가 지멘스로 옮기게 된 것이지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HFK에서 활동 모습

 

굉장히 좋은 기회를 갖게 되셨네요. MBA 결심하게 계기가 무엇일까요?

입사하고 신입사원 연수할 때 각 분야의 팀장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 최연소 팀장님 한 분이 MBA를 다녀오셨단 얘기를 듣고 ‘오 나도 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죠. 실제적으로 준비한 건 2007년부터였어요. 회사의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지원하려면 영어와 GMAT 점수가 있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회사에서 생각하는 인재 풀에 들어야 합니다. MBA 합격해놓고 ‘저 보내주세요’해서 회사와 협상하는 경우도 있긴 했었지만. 암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MBA시험 준비를 했는데 사실 저도 무모했던거죠. 회사 인재 풀에 아직 안들었으니까.

 주된 계기는 제가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홍보를 6년 했지만 평생 홍보를 할 수 있는 홍보쟁이는 아닌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영, 전략 쪽에 관심이 많아서 경영서적이나 DBR(동아비즈니스리뷰)를 많이 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브레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경영 전략쪽에서 일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전자공학 전공하고 홍보를 했기 때문에 ‘저 그거 잘해요. 하고 싶어요’ 한다고 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보니 MBA밖에 방법이 없겠더라구요. 그리고 MBA를 갔다 온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회사가 그 사람들에게 투자를 했기 때문에 투자대비 효과를 받아내려면 그런 쪽에 배치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목적으로 MBA를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타겟은 2010년까지 MBA를 꼭 가자 라는 목표를 가지고 준비해 왔기 때문에 그해 9월에 가게 되었던거죠.

 

    

 

                                  

힘들었지만 뿌듯했어요.

내 실력이 오르는 느낌을 주니까

이제는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준비된 자에겐 바늘구멍도 대문이 된다.

 회사에서 미국으로 보내주는 스폰서십 MBA프로그램이 있었는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건이 터지면서 회사에서 그 프로그램을 중단했어요. 회사에서 생활비, 학비를 다 대주는 프로그램이었고 저는 그걸 가려고 준비중이었는데. 갈 수 없게 된 거예요.
 근데 마침 일본 정부 장학재단 프로그램 공고가 떴어요. 회사의 파트너십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일본 정부에서 주는 장학생 MBA프로그램이었고 회사에서는 연봉만 주면 되는 거라 회사에서 지원허가를 내줬죠.
그때 저는 회사 프로그램을 지원하려고 마침 준비 중이었던 터라 점수가 있었습니다. 회사마다 1명밖에 지원을 못하고 한국에서는 2-3명만 갈 수 있는 좁은 관문이었는데도 정부장학생으로 뽑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거죠. 

 

MBA, 인생의 터닝포인트

 제가 갔던  MBA가 히토츠바시 대학교에 있는 ICS (International Corporate Strategy)입니다. 별칭이 ‘I Can’t Sleep’이었어요. 공부를 하느라 잘 시간이 없을 정도라는 뜻으로. 1년에 4학기를 마쳐야 했죠. 선배들은 ‘니가 밤새 케이스를 읽어도 다 못읽고 갈꺼다’했어요. 그렇게 힘들고 인텐시브한 곳이었죠. 그 와중에 대지진까지 겪으면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치만 그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1년동안 프로젝트도 하고 수업도 들으면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제일 좋아했던 수업이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이라는 과목이었는데,
 흔히 말해 과제가 주어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게 교과서적일 수도 있지만, ‘아 내일 당장 어떤 과제가 떨어지면 내가 당황하지 않고 해결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수업 하나하나 들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던 거 같아요.

 

MBA가 끝나갈수록 깊어지는 고민

 그래서 이제 MBA끝나가는데 그 때부터 고민이 된거예요. 이제 MBA 1년 과정이 끝나고 회사에 돌아가서 일을 해야하는데, 내가 아는 우리 회사는 접목해서 써먹을 업무가 없다는 생각때문에.

 제가 일본에 갈 때 가져갔던 것 중에 하나가 회사 전화번호부 였어요.  부서별 전화번호부를 보면서 나중에 어디로 가면 좋을까 생각한거죠. 근데 ‘아, 이거 갈 곳이 없다. 내가 지금 공부한 것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라는 일종의 괴리감이 생겼습니다. MBA에서 새롭고 나이스한 것들을 배웠는데 내가 아는 우리회사는 전통적이고, 연공서열이 중요하고, 회의 세시간 해도 팀장 말이 곧 법인 곳인데. 이런 것들이 쌓여서 ‘그럼 우리가 회의를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 회의시간을 떠올리면서 ‘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안고 회사에 돌아왔어요.

 

원하는 기회가 원했던 타이밍에.

 회사에 돌아왔을 때 일본 주재원 자리가 나서 지원을 했어요. 인사팀에서 저를 부르더니 ‘MBA를 다녀온 직원들로 구성된 컨설팅 팀이 만들어질거다’ 그래서 주재원 발령자 발표가 나기 전, 인하우스 컨설팅 팀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때 베인앤컴퍼니가 들어와서 역량강화 컨설팅을 하고 있었어요. 꽤 많은 돈을 지불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장기화 될거니 함께 배우면서 진행하다가 컨설팅사가 나가면 우리가 프로젝트를 주도해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바람이 있었죠.   


저는 그 기회가 좋았어요. 이런 팀이 있었으면 했는데 제가 들어왔을 때 딱 그런 팀이 생겼고  MBA에서 배웠던 것들을 써먹을 수 있게 된거죠. 문제를 해결하는 컨설팅사의 방식도 배웠고, 거기에 우리의 방식을 접목시켰습니다. MBA이전의 나였다면 이해를 못했을 내용들도 쉽게 수용할 수 있었죠.

제일 많이 깨달았던 것은 ‘내가 일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있구나’ 였어요.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그 동안 일을 많이 못해왔구나. 일주일 동안 했던 일을 하루에 하다니’ 였죠. 초 집중해서 분단위, 시간단위로 일하고, 아침 아홉시에 와서 저녁 8시-10시까지 일합니다. 그때까지 뭘 할지 다 스케줄이 잡혀있었어요. 인터뷰, 내부 미팅 등등. 그리고 그 시간마다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이 다 있었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지만 뿌듯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내 실력이 많이 늘어나는 느낌을 주니까. 왜냐면 일주일동안 해왔던 걸 하루에 다 해내니까. 이제는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까.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근데 힘들기도했죠. 그때 아들 하나만 있었는데 새벽에 나와서 밤에 집에 들어가는 그 생활을 1년가까이 하다보니까 아들 얼굴을 주중에 못봤어요. 컨설팅 직원들은 더 심했죠. 우리랑 빠이빠이하고 또 자기네 회사 가서 내일 계획을 짜야 하니까. 컨설팅 애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가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실감했죠.

 

나를 성장시킨 프로젝트, 자신감으로 다음을 도전하다.

 그 때 엄청 많이 배웠어요. 1년 동안 프로젝트 3개를 하면서 들었던 두가지 생각 중 첫번째는 많이 배웠지만 ‘힘들다’였고, 두번째는 ‘아 이게 반복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업부만 다를 뿐이지 그걸 접근해야  방법은 똑같은거예요. 그때 교만한 생각일 수 있는데 ‘더이상 배울게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너희들이 고생을 하면 나중에 뭔가 좋은 포지션을 통해서 성장을 도와줄꺼야’라고 하지만 그걸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던거죠. 이 일이 반복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회사가 너무 가족적이다 보니, 실력이 어떻든 회사에서 해주는 대우의 차이는 거의 없어요. 다 가족 아니냐는 거죠. ‘올해는 니가 잘받으면 이번에는 쟤 좀 밀어주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제가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곳에서도 실력발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해서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기, 중기 목표를 두고 회사생활을 합니다.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목표가 2010년까지 MBA를 가겠다였죠. MBA 갔다 와서는 3년 이내에 외국계 기업에 가자라는 목표가 있었구요. 외국에서 MBA하면서 외국계만의 장점을 많이 봤기 때문에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삶의 방향이 비슷해요.  ’40살이 되기 전에 해외에 나가 살아 보자’ 그래서 ‘외국계기업 경력이 약간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컨설팅 하면서 체력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고, ‘여기서 더 오래 머무는 것이 과연 경력에 좋을까? 다른 곳에는 기회는 없을까? 그럼 외국계 기업을 알아보자’ 해서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페셜 리스트처럼

세세하기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큰 흐름을 보면서

문제를 진단하고 방향성을 잡는데

자신있죠

 

 

지금 그럼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독일계 회사인 지멘스 헬시니어스 코리아에서 전략기획담당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메인 업무인 전사 전략 이외에도 주요 보고, 핵심고객관리, 고객데이터관리, 디지털헬스 등 조금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죠.

 

헬스케어 분야는 조금 생소한데, 의료산업 분야의 기술이나 장비를 제공해주는 건가요?

네 맞아요. 주로 헬스케어 의료기기들 MRI, CT, 초음파, 엑스레이 등을 취급 하고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주 고객은 병원 의사선생님들, 학과장 교수님들이구요. 한국 병원에 있는 MR, CT 장비 두 개 중 하나는 지멘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회사 직원 상당수는 의공학을 전공했어요. 교수님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메디컬 닥터(MD)분들도 많이 계시고 그분들이 학술적인 부분들을 많이 담당해주시죠.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산업분야를 선택하셨네요?

제가 업종에 대한 특별한 선호가 없었어요. 컨설팅 프로젝트를 여럿 하다보니 ‘방법을 알고, 사람들을 알게되면 나머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저라면 ‘홍보와 MBA경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식품사업쪽 영업역량을 강화하고, 의학의 영업역량을 강화할 수 있겠냐’라고 생각했겠죠. 그간의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들을 접목하다보니 ‘아 이게 가능하구나’. 전문가와 대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부하면 된다고 봤죠. 사실 방법론적인 문제입니다.

 지멘스 헬스케어 사업부라고 했지만 사실 제가 어떤 제품을 다룰지도 모르고 왔어요. 회사에서도 그냥 ‘컨설팅 하는 사람이 오면 어떤 제품이든 할 수 있을 거다’라는 생각으로 저를 뽑았고, 저도 비슷한 자세로 들어왔죠. 근데 들어와서 약간 당황하긴 했습니다.  ‘카디올로지, 페시올로지’ 등 ‘올로지’로 끝나는 각종 의학, 인체 용어들, 의학 장비들 때문에. 처음에 들어왔을 때 혼란스러웠던 점은 ‘내가 어디까지 알아야되지?’ 였어요. 지금은 괜찮긴 한데 익숙해지는데 2년정도 걸린 거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변화를 꿈꾸고 있는데 ‘어떤 인더스트리에 가야겠다’라고 업종은 제한을 하고 있지않아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이직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이번주도 사장님이 주신 숙제가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 하고 계신 전사 전략기획 업무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어떤 부분일까요?

 일단은 전략기획을 한다고 해서 제가 헬스케어 전문가는 아닌거 같아요. 전문가들은 따로 있고, 제가 헬스케어 산업쪽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큰 흐름을 보면서 문제를 진단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사실 이게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으로 들리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거예요. 영업직원은 담당 병원, 고객, 제품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특정 고객에 대해서, 특정케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는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사실 많이 없어요. 그렇지만 전반적인 산업이 돌아가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자신있죠.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니까. 그걸 제가 못하면 창피당합니다. 저희는 장비마다 그 장비의 스페셜 리스트들이 다 있어요. 그 분들처럼 세세하게 다 알지는 못하죠. 제가 하는 일은 무조건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설 곳이 없어지는 거죠. 그런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사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는 영업이 꽃입니다. 영업하다가 백오피스로 가시는 분들은 있긴 하지만 전략쪽으로 오시는 분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저도 약간 특이한 케이스긴 합니다. 경력직으로 오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의료계 쪽에서 종사했던 분들이 오시는데 저만 식품회사에서 왔죠. 다들 신기해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얘기 해요. ‘마가님이 제일 먼저 나갈줄 알았는데, 다들 나가고 마가씨만 남아있네요.’

 딱히 어려운 점은 많이 없었지만, 아 그건 있어요. 영업직원들에게 인정받는 것. 어떻게 하면 스페셜 리스트들에게 인정받을까라는 생각을 초반에 많이 했죠. 꼭 인정을 받아야 되는 거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수 도 있으시겠지만.

 

요즘 회사에서 집중하고 있는 신사업 뭐가 있을까요?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쪽이요. 헬스케어쪽은 데이터가 많이 나오거든요. MR, CT쪽에서 찍으면 다 데이터이니까 그런 데이터들을 환자든 회사든 그들에게 필요한 포맷으로 가공해서 비주얼라이징 해서 제공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심한 편이죠. 그래서 생각보다 비지니스가 활발하지 못합니다. 디지털, 데이터와 관련된 것은 ‘공짜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뭔가 멋지게 만들어서 제공해도 부가적인 혜택 정도로 여깁니다. 돈 주고 사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하는 역할들을 그걸 하는 조직이 아예 없으니 일단 제가 하죠. 스터디하고, 외국본사에서 직원이 들어오면 같이 워크샵도 하고. 회사에서 누가 맡아서 하면 좋을지 팀을 셋업을 해주고 저는 빠지죠.

 흔히 말하는 빅5병원 – 서울대, 아산, 삼성, 성모, 세브란스. 이런곳은 자체 AI센터가 구축되어 있어요. 아산만해도 외래환자가 하루에 만명이예요. 데이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죠. 그렇지만 병원은 데이터를 쌓아두기만 합니다. 그것을 어떤 플랫폼에 담아서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이나 구축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인거죠.

 

데이터를 가공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건가요?

 예를 들면 저희가 슈퍼컴퓨터 센터가 4군데가 있어요. 그중에 한군데가 미국 뉴저지에 ‘셜록’이라는 슈퍼컴퓨터가 있는데 하루에 400가지 AI실험을 합니다. 그런 건 병원에는 없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까지는 못가니까. 그런 것들 통해서 데이터만 쌓고 있는 한계를 저희 회사에서 보완해주죠.

 전립선암을 예로 들어볼께요. 전립선 암에 대한 모든 병력 데이터들, 영상데이터들, 그 다음에 거기에 들어가는 세포와 단백질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들 조합을 하고, 스스로 학습까지 할 수 있게끔 만들면 나중에 전립선암 사진만 찍으면 이것이 3D영상화가 되고, 어떤 부위에 비정상적인 이상이 있는지가 불이 켜집니다. 그런 것들은 병원에서는 자체적으로 못하죠. 병원이 할 수 없는 것들 중에 기업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요즘에 많이 이야기 하는 ‘디지털 트윈’이 뭐냐하면, 만약에 심장이 아파요. 그럼 심장수술을 해야하는데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거든요. 디지털 트윈은 심장이랑 동일한 가상의 심장을 만듭니다. 인공심장이 아니라 가상심장이요. 심장을 찍은 MRI영상을 가지고 심장의 세포들과 단백질, 심전도 반응 그런 것들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가상의 심장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거기서 어떤 약물을 이만큼 투여했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 이만큼 절개 했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 가상심장으로 시뮬레이션 한 다음에 실제 수술에 들어갈 수 있어요.

 한 사람의 신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 하면 예측도 가능합니다. 6개월 안에 어떤 질병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1년안에 암, 쇼크가 올수도 있겠구나 그런것들.

 AI는 지멘스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AI라는 명칭은 안썼겠죠. 요새들어서 핫한 명칭이 붙은거 같고. 딥러닝, 머신러닝과 관련된 특허가 700~800여개가 있어요. 데이터 분석 전문가 팀도 따로 있구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결과물은 잘 내고 있긴 한데, 기승전 한국의 규제가 매우 강하다 보니 사업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네가 모두 준비한 것을 나는 보고 할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수 있어”

 

 

좋아하는 상사나 롤모델이 있으실까요?

제가 회사에서 좋아하는 상무님이 일전에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니가 여기에 남아있던 다른 곳으로 가던 현재 너는 베스트여야 한다’, ‘니가 나가더라도  회사가 너를 잡고 싶을 정도로 사람이 되어서 나가야지’ 라고. 그분은 저와 대화가 잘 통합니다.  그냥 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말이 잘 통하는.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하달하시기 보다는 제 의견을 경청해주십니다. 예를 들어서 문제나 이슈가 있으면 보고하러 들어가면, ‘그래서 너의 생각은 뭔데?’ 물어보죠.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그냥 들고 오는 거 말고 ‘이런 문제가 이렇게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될 거 같고, 이거는 이런 순서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얘기를 하면 다 발굴 해줘요. 응 그렇게 하라고. 본인은 100점짜리 답을 알고 있는데 들고 오는 자기 직원이 80점짜리 솔루션을 들고와도 그 들고오는 자세가 가상하기 때문에 그 80점짜리 답으로 진행하라고 합니다. 진행하다가 또 조언을 구하러 왔다 갔다하면서 100점짜리 답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직을 하게 된다면, 너의 경력을 쓸 때 니가 한 일을 쓰지말고 내가 한 일을 쓰라고 말씀주십니다. 저는 전략기획 매니저고 상무님은 전략도 맡고 사업부도 맡고 인포메이션 비지니스도 하고 심사업도 하죠. 제가 뭔가 결과물을 내면 상무님을 통해서 보고가 올라갑니다. 상무님과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업무공유도 많이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너가 다 할 줄 안다. 내가 사장님한테 보고 할 때도 너가 했던 것을 보고하는 거고, 결정은 내가 앞서 나가서 하지만 사실 준비한 건 너가 다 한거다’라고. 그 말씀 통해서 제가 어느정도 눈이 뜨였죠.

 

굉장히 좋은 상사분을 모신거 같으세요. 포용력 있게 후배를 끌어 주시고, 자신감도 상승시켜주는 분 같으세요.

 전략팀은 그런 거 같아요. 항상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마가 차장님은 뭐하세요?’ 이런거예요. 명확하게 안보이니까. 전략기획 매니저라고 하면 ‘뭐하는거냐? 우리의 전략을 차장님이 다 해오는 거냐?’ 전사전략 수립하고, 신규사업 인큐베이팅하는 이런 일들이 눈에 잘 안보이잖아요.

          

잘 모르는 분야에서 업무를 하게 되었을 때 빨리 적응하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면?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하지만 어쨌든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작을 했겠죠? 좋아하는 것들은 빨리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그런 장점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할 수 있는거 같아요.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습니다. 전공한 분야가 아닌 관심있는 분야는 일단 트라이 하고 파면서 공부하는 것들이 있어서. 예를 들어서 지금도 디지털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는 나를 셀링할 때 전자공학 전공을 또 어필하죠.



 

굉장히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데요. 요새들어 가장 관심가는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요?

 공유경제에 관련된 것에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잉클 OB멤버분들 중 지금 바빠서 못나오고 계신 분중에 연락을 하고 지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 중에서도 공유경제에 관심있거나 그런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마치 제가 그 회사의 멤버인 것처럼 서로 피티도 주고 받고하는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관심 있어서.

 스타트업 하는 친구중에 저한테 그런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과 가지고 와서 브리핑하고 검토해달라는 친구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언도 해주고. 소비자 입장에서 포인트들도 짚어주기도 하고.

 

지금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데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있으면 어떤걸 하고 싶으세요?

와이프는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저는 항상 로또 당첨되면 체육관을 짓는 게 꿈이었어요. 운동을 좋아하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체육관을 하나 지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없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꿈이죠. 땀흘리는 것을 좋아해서 테니스, 농구, 야구, 탁구 등 구기종목은 다 좋아하고 왠만큼 다 합니다. 요즘에는 다치면 안되니까 축구나 농구는 덜하긴 하는데 공으로 하는 운동은 골프빼고 다 합니다. 골프를 안하는게 기회가 안온것도 있고 골프를 하려면 다른 운동을 포기해야해요. 제가 테니스를 하는데 테니스와 골프는 상생이 안되거죠. 왜냐면 스윙이 다르니까. 테니스는 요건데 (휙), 골프는 요렇잖아요 (부앙). 어깨가 기억하는 스윙이 달라지는 거예요. 하물며 저는 테니스를 배우면서 탁구도 멈췄어요. 테니스는 요곤데 (휙), 탁구는 요고잖아요(으쓱). 하나에 집중해야죠.


 

    
                                

다양한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뷰를 얻어가요.

그리고 생각하죠.

이분들과 언젠간 함께 모여 일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HFK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지난 두 시즌 잉글리시 클럽 OP를 맡으셨던 방정환님과 예전부터 페이스북 친구였어요. 그분이 페이스북에 HFK 관련 게시물에 라이크를 눌러서 알게 되었죠. 근데 마침 지멘스 호주에서 2주동안 교환프로그램을 다녀온 직후라서 ‘영어를 꾸준히 좀 해야겠다’라는 동기부여가 되어있던 상태였어요. 어디에서 영어공부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죠. 제가 HBR창간호부터 보고 있던 터라 내가 좋아하는 HBR 아티클로 영어를 토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구나. 그래서 왔던 게 2016년 10월입니다. 그때 멤버들을 아직까지 몇몇 만나고 있죠. 그때 한창 수요일 잉클이 굉장히 핫했어요. 약간 가족같은 10명의 멤버들이 오랜기간 변하지 않고 쭈욱 함께 했어가지고. 나이대들도 다 비슷비슷 하고 서로 잘 맞다보니까 그 잉클멤버들이 굉장히 오래 갔죠

 
멤버로 참여했을 때랑 [고급진영어] 테마를 리딩하는 OP로 참여했을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

제일 큰 차이는 아티클을 읽는 횟수죠. 보통은 한번 읽고 오는데 OP가 되면 처음에 큐레이션 해야하니까. 잉클은 두시간 반 정도를 하는데 처음 한시간은 테드의 좋은 영상을 한 10분정도 본 다음에 토론을 합니다. 그 다음에 아티클을 한시간 반정도 합니다. 아티클의 어떤 포인트를 우리가 토의를 할지 OP들이 돌아가며 피티로 준비를 해서 발표를 합니다.

비즈니스 모델, 특징 설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티클을 세네번 읽습니다. 많이 읽다보니까 머릿속에 남구요. 한번읽고 잉클 왔다가면 한 달뒤면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여러번 읽고, 한글버전도 읽으면 아티클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게 되고 영어실력도 늡니다.

근데 잉클은 영어를 늘릴려고 오진 않아요. 영어실력 늘리려면 학원을 가도 되거든요.

영어 중급정도 이상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HBR이라는 좋은 아티클을 가지고, 그 아티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공감대를 이루면서 서로 다른 인더스트리에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걸 영어로 하는거죠. 반은 영어, 반은 네트워킹인거죠. 그 네트워킹이라는게 친해진다라기 보다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좀 배우는 거죠. 근데 이제 OP를 하면 영어실력은 멤버일때보다는 훨씬 는다는 장점이 있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말도 해야되고, 2주에 한번씩 영어발표 해야하니까. 약간 부담도 있는 거죠.

첫 OP할 때는 준비하느라 회사에 휴가도 냈어요. 종각 스타벅스에서 그렇게 오래있던건 두번째 였던듯 하네요. OP하면 책임감이 많이 생기죠. 사람이 얼마나 오냐도 중요하고. 멤버였을 때는 사람이 둘 셋밖에 없으면 오늘 OP 힘들겠다 했는데 이제 제가 OP가 되니까… 하하하. 사람이 적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이 하는 거죠. 그만큼 좀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고마워합니다. 이분이 안왔으면 큰일날 뻔 했다 하면서 서로.

 
훈훈한 클럽이네요. 돈독해지겠어요. 대화를 계속하다보니까.

근데, 이게 영어다 보니까. 한국어 쓰는 만큼 돈독해지진 않더라구요. 하하하

 

HFK활동하면서 도움이 부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 조금 작은 부분이긴 한데, 여기를 안왔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많이 경험한거 같아요. 여기 안왔으면 그냥 회사, 집만 다녔겠죠.

 HFK에 오래 있다보니 사람들을 보면,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주로 오는거 같아요. 저랑 결이 맞는. 하지만 전혀 다른 인더스트리에서 일하며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분들을 편하게 만나서 대화할 수 그런 시간을 제일 크게 얻어가는 거 아닐까 하죠. 제가 못보는 또 다른 뷰를 보게 해주기 때문에 저의 업무에도 도움이 되요.
 

어떤 한 멤버 분이 공유 비즈니스 모델을 해보려 한다고 해서 OB들끼리 모여서 사업 아이템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장난으로 한마디씩 했어요. ‘내가 그럼 전략할께, 너는 마케팅 하고. 너는 건축하고. 너는 홍보하고’ 그런 얘기들을 막 하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데 ‘그런 것들이 언젠간 결실을 맺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저 분들이랑 일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해요.

한번은 제가 HFK에서 ‘디지털 헬스’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어요. 그리고 회사 상무님에게 그 내용을 회사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하니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해보라고 하셨어요. 사내 전사 메일에 ‘점심시간에 이런내용 강의해드립니다. 선착순 30명 받겠습니다’했더니 한 40명정도 신청하셔서 지멘스에서 하고 있는 내용도 덧붙여서 처음으로 진행했죠. 그 강의가 기폭제가 되어서 그런 발표를 분기에 한번씩 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한발짝 앞선 기획을 해야하는 업무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마가님에게 딱인 것 같습니다. 마가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아내와 대화할 때 가장 솔직한데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던거 같아요. ‘일은 일 외적인 것들을 서포트 하기 위해 하는 거다’라고. 일이 메인이 아니라 일 외의 것이 메인이고 그 외의 것을 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써 서포트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딱 분리될 수 없기는 하지만. 제가 그 질문을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이게 솔직한 답이긴 합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 해본다면 저에게 일이란 ‘새로운 것’이에요. 저는 똑같은 것을 오래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거죠. 전혀 다른 거라도. 그게 두렵기도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일인거 같아요. 뭔가 고인 것은 일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 그럼 똑같은 일 10-20년 한 사람이 보면 뭐라고 할텐데. (걱정걱정) 저는 약간 그런거 같아요. 똑같은 일을 오래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지금 커리어 패스에서 다 보여요. 그런 부분이

제 커리어를 누가 보면 다양하고 특이하게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깊이가 없고 대체 무슨 전문가야?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거 같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이렇게 듣다 보면 짧게 있던 분야는 없어요. 식품쪽도 5-6년 하셨고, 헬스케어 분야도 한 7년 하셨구요.

 


인터뷰, 글: 최서인 @se2nee, 박가을 @fall_in_fall

HFK @hfk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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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전략기획가”의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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